베를린 장벽, 그냥 구경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베를린을 여행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이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더라구요. 한반도 분단과 겹쳐 보이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베를린 장벽부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그리고 독일 맥주까지 제가 여행하며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베를린 장벽 : 역사를 걷는다는 것
베를린 장벽(Berlin Wall)은 1961년 동독 정권이 단 하룻밤 사이에 세운 분단의 구조물입니다. 여기서 '데드 스트립(Dead Strip)', 즉 죽음의 지대란 장벽과 장벽 사이에 조성된 완충 구역을 말하는데, 동독 경비대가 탈출 시도자를 향해 사격 명령을 받은 공간입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ätte Berliner Mauer)은 바로 이 죽음의 지대가 실제로 남아 있는 베르나우어 거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고 느낀 감정은 무거움이었습니다. 장벽을 넘다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것을 보면서, 통일된 지금의 모습이 괜히 뭉클하게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도 여전히 분단 상태라는 사실과 자꾸 겹쳐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갔습니다. 기념관은 주간에만 운영되지만, 장벽 자체는 24시간 볼 수 있고, 무료로 운영되고 있으니 일정이 빡빡한 분들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벽과 관련해 유명한 곳이 또 있스빈다. 바로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입니다. 이곳을 먼저 들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기념관에 시간을 더 쓰길 권하고 싶습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냉전 시기 미군이 통제하던 세 개의 국경 검문소 중 하나로, NATO 음성 알파벳의 세 번째 기호인 '찰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슈첸슈트라세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 교차로 인근에 일부 잔재가 남아 있고, 근처에 베를린 장벽 박물관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좀 상업화된 느낌이 강했고, 역사의 무게감은 기념관 쪽이 훨씬 진합니다.
장벽에서 예술로 :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베를린 장벽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이곳은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슈프레 강변을 따라 1.3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이 구간은 21개국 118명의 예술가들이 장벽 동쪽 면에 벽화를 그려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990년, 독일 통일 이전에 이미 기념관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출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공식 사이트).
저는 팝아트 계열 이미지에서 많이 봐왔던 드미트리 브루벨(Dmitri Vrubel)의 작품, '하느님,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살아남게 하소서'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서 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인데, 소련 지도자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가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으로, 1979년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 간의 의례적 포옹을 묘사한 것인데, 쉽게 말해 두 지도자의 밀착 관계를 풍자한 작품입니다.
실내 전시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야외 갤러리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점이 좀 어색하긴했습니다. 그런데 햇빛이 벽화 위로 쏟아지는 순간, 실내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비르기트 킨더스(Birgit Kinders)의 작품처럼 장벽을 뚫고 나오는 트라비(Trabi), 즉 동독의 상징적 소형차가 묘사된 그림도 그런 야외 환경 속에서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독일 맥주: 양조장에서 마셔야 진짜입니다
독일 맥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의 대용량 맥주잔, 아니면 슈퍼마켓에 진열된 라거? 저도 처음엔 독일 라거 몇 종류 정도만 알고 갔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독일 크래프트 맥주 씬(scene)은 제 예상보다 훨씬 다채로웠습니다.
독일 맥주 문화의 기반에는 '라인하이트스게보트(Reinheitsgebot)'가 있습니다. 라인하이트스게보트란 1516년 제정된 독일의 맥주 순수령으로, 맥주는 반드시 물, 보리, 홉, 효모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이 원칙이 독일 맥주의 품질과 다양성을 지탱해온 토대입니다(출처: 독일 관광청).
제가 직접 방문한 곳은 렘케(Lemke)라는 양조장이었습니다. 기차역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배경음처럼 기차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묘하게 낭만적이었습니다. 거기다 맥주가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나오는데, 마치 온도 소믈리에가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때까지 마셔본 맥주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독일 여행의 재미를 상당 부분 놓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여행을 다녀와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베를린 길거리 식당에서 사람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맥주를 마시는 풍경은, 우리나라 을지로 야장 감성과 비슷하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그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싫은 분들에게는 렘케처럼 좀 더 조용한 양조장 바(brewery bar)를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auslanderblog.com/berlin-travel-guide-first-time-visitor/